나는 유시민이 밉다.
그는 나의 인생을 뒤흔들어 버렸다. 이것이 내가 그를 미워하는 첫번째 이유다.
그가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을 뒤로 하고, 서울 유학길을 떠나온 법관 지망 소년’이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러했다. 그가 80년 5월 구속학생이 되고, 강제징집을 당하는 등 본인의 고초를 통해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체득한 반면, 나는 그의 ‘항소이유서’를 읽으면서 한국사회의 부조리에 눈 뜬 것이 다르다면 다르겠지만... 그의 행보를 따라서 나도 법관의 꿈을 접고 경제학과로 선회를 하였고, 민주주의의 나무가 올곧게 자라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청년이 되었다. 내가 만일 그의 ‘항소이유서’를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독재타도’를 외치던 학생들에게 ‘도로교통법 위반’을 적용하면서도 ‘국보법 적용 않은 게 어디야…’라며 자위하는 법관이 되어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청운의 꿈에 부풀어 있던 한 소년의 일생을 뿌리 채 뒤흔들어 버린 유시민, 어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나로 하여금 한국정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게 했다. 이것이 내가 그를 미워하는 두번째 이유다.
나는 지독히도 선거운이 없는 사람이다. 1984년 이후로 어언 20년간 크고 작은 모~든 선거에서 내가 찍은 사람이 된 적이 없었으니... 2002년에도 정몽준씨의 기습적 단일화 철회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요원해 보였다. 나는 여전히 권영길씨를 찍을 생각이었다. 당선되지 못할 줄 알면서도 가장 진보적 후보에게 꿋꿋이 한표를 던지는 것, 그것이 내가 세상에 저항하고 나의 양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분하고 잠이 안오던지… 망연자실하고 있던 새벽에 그의 글을 접했다. 포기하지 말란다. 개혁세력이 단결하면 당선시킬 수 있단다. 그래서 그를 믿고, 내 평생 처음 남의 말을 따라 투표를 했다. 당선이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386동지들이 뿔뿔이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흩어져 갈 때, ‘YS의 3당 합당’과 ‘DJ의 JP와의 연대’등을 볼 때, 현실정치에 대한 냉소로 나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새로 꿈틀거리는 희망이었다. 희망은 항상 고통을 수반하는 것! 유시민, 그는 나를 편안히 현실에 안주하며 살도록 내버려 두질 않는다.
그는 나로 하여금 열린우리당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내가 그를 미워하는 세번째 이유다.
대통령을 화목재 삼아 얼떨결에 과반수 여당이 되긴 했지만, 386동지들이 대거 참여하는 등 그 어떤 정당보다도 나로 하여금 기대를 갖게 한 우리당.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다. 우리당을 과반수 여당으로 만들어 준 국민들의 성원을 이렇게 무참하게 만들어도 되는 것인지… 그래서, 나는 우리당에 대한 희망을 어느 정도 걷어 들여야 되는 것 아닌가 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비 빠져나가는 것 그냥 두는 것 정도로 우리당에 대한 예의는 갖췄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항상 그가 문제다. 그가 당의장 선거에 출마를 하고 만 것이다. 그가 당의장이 되면, 나는 다시 우리당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자유’, ‘평등’, ‘평화’의 꿈을 계속 꿀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계속 꿈꾸는 자는, 계속 피곤한 법!
20년 세월동안 내 인생의 중요한 시점마다 불쑥 나타나서는, 나를 뒤흔들어 놓고, 편안히 살지 못하게 하고, 아직도 ‘철없는 소년들이나 꿀만한’ 꿈을 꾸게 만드는 유시민…
그래서, 나는 그가 밉다.
그는 나의 인생을 뒤흔들어 버렸다. 이것이 내가 그를 미워하는 첫번째 이유다.
그가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을 뒤로 하고, 서울 유학길을 떠나온 법관 지망 소년’이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러했다. 그가 80년 5월 구속학생이 되고, 강제징집을 당하는 등 본인의 고초를 통해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체득한 반면, 나는 그의 ‘항소이유서’를 읽으면서 한국사회의 부조리에 눈 뜬 것이 다르다면 다르겠지만... 그의 행보를 따라서 나도 법관의 꿈을 접고 경제학과로 선회를 하였고, 민주주의의 나무가 올곧게 자라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청년이 되었다. 내가 만일 그의 ‘항소이유서’를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독재타도’를 외치던 학생들에게 ‘도로교통법 위반’을 적용하면서도 ‘국보법 적용 않은 게 어디야…’라며 자위하는 법관이 되어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청운의 꿈에 부풀어 있던 한 소년의 일생을 뿌리 채 뒤흔들어 버린 유시민, 어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나로 하여금 한국정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게 했다. 이것이 내가 그를 미워하는 두번째 이유다.
나는 지독히도 선거운이 없는 사람이다. 1984년 이후로 어언 20년간 크고 작은 모~든 선거에서 내가 찍은 사람이 된 적이 없었으니... 2002년에도 정몽준씨의 기습적 단일화 철회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요원해 보였다. 나는 여전히 권영길씨를 찍을 생각이었다. 당선되지 못할 줄 알면서도 가장 진보적 후보에게 꿋꿋이 한표를 던지는 것, 그것이 내가 세상에 저항하고 나의 양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분하고 잠이 안오던지… 망연자실하고 있던 새벽에 그의 글을 접했다. 포기하지 말란다. 개혁세력이 단결하면 당선시킬 수 있단다. 그래서 그를 믿고, 내 평생 처음 남의 말을 따라 투표를 했다. 당선이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386동지들이 뿔뿔이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흩어져 갈 때, ‘YS의 3당 합당’과 ‘DJ의 JP와의 연대’등을 볼 때, 현실정치에 대한 냉소로 나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새로 꿈틀거리는 희망이었다. 희망은 항상 고통을 수반하는 것! 유시민, 그는 나를 편안히 현실에 안주하며 살도록 내버려 두질 않는다.
그는 나로 하여금 열린우리당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내가 그를 미워하는 세번째 이유다.
대통령을 화목재 삼아 얼떨결에 과반수 여당이 되긴 했지만, 386동지들이 대거 참여하는 등 그 어떤 정당보다도 나로 하여금 기대를 갖게 한 우리당.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다. 우리당을 과반수 여당으로 만들어 준 국민들의 성원을 이렇게 무참하게 만들어도 되는 것인지… 그래서, 나는 우리당에 대한 희망을 어느 정도 걷어 들여야 되는 것 아닌가 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비 빠져나가는 것 그냥 두는 것 정도로 우리당에 대한 예의는 갖췄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항상 그가 문제다. 그가 당의장 선거에 출마를 하고 만 것이다. 그가 당의장이 되면, 나는 다시 우리당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자유’, ‘평등’, ‘평화’의 꿈을 계속 꿀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계속 꿈꾸는 자는, 계속 피곤한 법!
20년 세월동안 내 인생의 중요한 시점마다 불쑥 나타나서는, 나를 뒤흔들어 놓고, 편안히 살지 못하게 하고, 아직도 ‘철없는 소년들이나 꿀만한’ 꿈을 꾸게 만드는 유시민…
그래서, 나는 그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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