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빈약한 윤동주 60주기 행사 | |||
[연합뉴스 2005-02-15 16:16] | |||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지난해 작고한 김춘수 시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내 또래의 윤동주 시인은 독립운동을 맹렬히 했다기보다 나처럼 우연히 고역을 치르다 생체실험의 대상이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시인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윤동주(1917-1945) 시인이 일본 유학시절 투옥됐다가 군국주의자들의 생체실험 만행으로 희생됐다는 것은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다. 일제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서시' 중)던 순백의 가녀린 영혼을 그렇게 무참히 짓밟았다. 16일은 윤 시인이 마루타로 굳어져 지상의 생애를 마감한 지 꼭 60주기가 되는 날이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만행으로 사라져 간 식민지의 억울한 넋이 어디 윤 시인뿐이랴. 그런 뼈아픈 과거사를 들춰내 가려진 진실을 밝혀내자고 나라가 제법 시끄러운 것이 요즈음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더군다나 윤동주 시인의 서거 60주년인 올해는 바로 일제 해방 60주년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 차원에서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결성돼 해방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경축하자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에서 들려온 윤동주 시인의 추도모임 소식은 우리가 맞은 광복 60주기의 의미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지난 13일 윤 시인이 생을 마감한 일본 규슈(九州)의 후쿠오카(福岡) 형무소 근처 작은 공원에서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참가해 윤동주 시인 서거 60주기 추도식을 가졌다고 한다. 후쿠오카 시민들로 구성된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이 주도한 행사였다. 시민들은 10년 전부터 매년 기일 직전의 일요일에 윤 시인의 추모모임을 갖고 시낭송 등의 행사를 열고 있다고 한다. 이 행사에 이어 윤 시인이 유학했던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 대학은 윤 시인의 서거 60주기에 맞춰 16일 한국 유학생들과 함께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가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일본에서 전해진 윤 시인의 추모 소식을 나열하는 것은 정작 그의 조국인 이 땅에서는 60주기를 맞아 이렇다할 추모행사 하나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 시인의 모교인 연세대의 '윤동주기념사업회'(회장 정창영 총장)가 16일 오후 2시 교정에 세워진 윤 시인의 시비 앞에서 유족들과 함께 조촐한 헌화 행사를 갖겠다는 것이 고작이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때가 되면 추모행사를 열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윤 시인의 삶은 갈수록 잊혀져 가는 것을 느낀다"면서 "윤 시인의 추모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도 유족이나 뜻있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윤 시인의 뜻을 기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일본처럼) 제대로 된 추모 행사를 열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세상을 떠난 사람의 넋을 기리는 것은 그 속에 깃든 진정성을 되새겨 '지금 여기'의 삶을 온전하게 하려는 뜻에서다. 옛 책에 "돌아가신 사람 섬기기를 산 사람같이 하고(事死如事生), 없는 사람 받들기를 있는 사람같이 하라(事亡如事存)"고 했던 것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미래로 향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제대로 굴러가게 하려면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규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현재의 삶 속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윤동주 시인의 60주기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야말로 과거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빈약한 역사의식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같아 부끄럽기만 하다. ckchung@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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