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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이십 구일 (도종환)

높푸른 하늘 2004. 9. 1. 13:36
두 해 전 그 여름밤 나 혼자 떨어져 살던
시골읍의 어두운 밤길을 걸어
쓸쓸한 하숙방을 찾아가며 몰래 울었다.
쫓겨다니며 살아온 세월이 서러워서가 아니었다.
누구를 불러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궁벽진 거리에서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고
그 노래를 끝까지 다 못 부르고 혼자 울었다.
유월의 하늘을 내내 떠돌던 최루탄 소리와
쫓기며 눈물을 씻던 생선가게의 비린내 나는 물과
다방여자들이 황급히 거리로 던져주던 손수건
낮선 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어깨를 낀 채
완강하던 폭력들을 골목으로 내몰던 기억과
저녁에 본 큰 활자들의 모습이 무수히 지나갔다.
그리고 더도 덜도 아닌 꼭 둘 해가 지난 오늘
유월 이십구일 나는 지금 죄수복을 입고 감옥에 앉아있다.
창 밖엔 캄캄한 어둠을 빗줄기가 그으며 가고
마른 번개의 보랏빛 섬광이 이마를 때린다.
두 해 동안 정말 바쁘게 살았다.
그들이 약속한 민주적인 삶을 위하여 
내가 발 디디고 선 교단의 민주를 위하여
따뜻한 밥 한 그룻 식구들과 나누어 먹지 못하고 
푸근하고 넉넉한 잠을 자보지 못했다.
내가 하는 일에 조금도 삿된 마옴을 먹지 않았었다 
취침나팔 소리에 모포를 끌어 얼굴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에 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