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스포츠와 병역면제...
높푸른 하늘
2006. 3. 15. 11:54
#밥 펠러(Bob Fellar) 이야기.(2005년 11월 마이데일리 김형준 기자)
“펠러는 1936년부터 1956년까지 18시즌 간 오직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만 활약하며 266승162패 방어율 3.25, 탈삼진 2581개의 화려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이는 최고의 전성기였던 23세부터 26세까지의 4년이 빠진 기록으로, 4년간의 공백이 아니었다면 100승-1000삼진이 추가된 360승-3600삼진도 가능할 수 있었다.” (중략)
“1941년 12월8일. 연봉 재계약을 위해 차를 몰고 구단으로 향하던 펠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긴급뉴스를 들었다. 바로 '진주만 공습'의 소식이었다. 펠러는 곧바로 핸들을 꺾었고, 그로부터 3일후 스타 메이저리거로는 행크 그린버그(디트로이트)에 이은 2번째로 군에 자원입대했다. 당시 펠러는 암으로 작고한 아버지 대신 가족들의 생계를 돌보고 있어 징집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이것은 펠러에게 이유가 되지 못했다.
전함 앨라바마(USS Alabama)호에 배치된 펠러는 160km의 강속구를 뿌리는 대신 분당 160발이 발사되는 40mm 대공포 사수를 맡았다. 유명 메이저리거 대부분이 후방에 배치된 반면, 펠러는 최전방에서 싸웠다. 북해에서 독일 U-보트와 맞섰으며, 태평양 전선에서는 마셜섬 전투, 괌 상륙작전, 도쿄 공습 등 수많은 역사적 전투에 참가했다.”
#크리스티 매튜슨(C Mathewson) 이야기(2005년 11월 마이데일리 김용철 기자)
“1905년 25세이던 매튜슨은 정규리그에서 31승9패 방어율 1.28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올린 후 월드시리즈를 맞는다. 그리고 월드시리즈 1차전(3-0) 3차전(9-0) 5차전(2-0)에서 완봉승을 따내며 팀이 4승1패로 우승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당시 6일동안 등판한 3경기에서 27이닝 무실점, 14안타 1볼넷 18삼진을 뽑아내는 완벽한 피칭을 한 것.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하지만 매튜슨이 지금까지도 팬들에게 기억되고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은 그가 월드시리즈에서 선보인 압도적인 피칭이나 그가 남긴 기록 때문만이 아니다.
1918년 당시 38세의 매튜슨은 세계 1차대전에 참전을 선언하고 프랑스 동부전선에 투입된다. 그의 신분과 나이 때문에 이미 병역을 면제 받은 상황이었고 계속해서 야구선수로 활동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가야 하는 길을 특별한 이유를 만들거나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하며 의무를 회피하는 비겁자가 되지 않겠다"라며 자원입대한 것. (중략)
매튜슨은 독일군의 독가스 공격에 노출되며 폐가 크게 손상되었고 평생 깊은 기침을 하게 되었다.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악성 결핵으로 발전해 이후 여생을 병상에서 고통 받다가 1925년 월드시리즈 개막일에 4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가 최고의 피칭을 보인지 정확히 20년 뒤에 맞이한 비극이다.
최고의 야구 선수이자 자신의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죽어간 매튜슨은 이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다섯 선수 중의 한 명이 됐다.”
#테드 윌리엄스(T Williams)이야기 (2005년 11월 마이데일리 김형준 기자)
"1942년 타율 .356 36홈런 137타점을 기록한 윌리엄스는 1943년 방망이를 내려놓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윌리엄스는 꼬박 3년을 해군에서 비행 교관으로 복무했다. 절정이었던 만 24세에서 26세 사이를 군대에서 보낸 것. (중략)
1952년 다시 한국전 참전을 선언했다. 4월30일 보스턴은 다시 군복을 입게 되는 윌리엄스를 위해 '테드윌리엄스 데이'를 정했다. 이날 윌리엄스는 디지 트로트로부터 통산 324호 홈런을 뽑아냈다. 모두가 이를 윌리엄스의 마지막 경기이자 마지막 홈런으로 생각했다. 전장에 투입된 윌리엄스는 한차례 격추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39번의 출격을 무사히 마쳤다. 이듬해 8월 돌아온 윌리엄스는 스프링캠프를 포함해 전혀 훈련을 하지 못했음에도 곧바로 경기에 나서 37경기에서 타율 .407 출루율 .509 장타율 .901 13홈런 34타점을 기록하며 건재를 알렸다.”
테드 윌리엄스는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이며 통산 출루율 ML 역대 1위(0.482)를 기록하는 선수다.
#워렌 스판(W Spahn) 이야기 (Mlb Cassice, MLB 매니아분석 06/2/17)
“스판은 1940년에 보스턴 브레이브스(現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입단하였고 1942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였지만 상대 타자를 고의로 맞추라는 감독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불과 4경기에 등판한 뒤에 승패를 기록함 없이 다시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마이너리그는 스판의 무대가 될 수 없었다. 1점대 방어율로 타자들을 압도하였고 메이저리그 복귀는 머지않은 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엔 제2차 세계대전이 그를 가로 막았다. 젊은 나이의 스판은 징집 대상이었고 유럽의 전쟁터에서 3년간 소위로 복무하며 3개의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에서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도전정신과 용기를 배웠다.”고 회고했다.
어쨌든 감독의 이기심과 확대된 전쟁은 그의 메이저리그 1승을 4년이나 늦추었다. 1946년에 8승 5패를 기록하고 풀타임 선발로 출장한 다음해부터 17시즌 동안에 13시즌 +20승을 거두었다. 13시즌 +20승은 사이 영에 이은 역대 공동 2위(매튜슨과 타이)의 성적이다. 1952년의 14승에 1승이 더해진다면 스판은 그렉 매덕스 이전에 17년 연속 +15승이라는 기록을 보유할 수도 있었다.”
스판은 메이저리그 왼손 투수 최다승을 기록했고 소속 팀에서 영구결번이 됨은 물론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다.
“펠러는 1936년부터 1956년까지 18시즌 간 오직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만 활약하며 266승162패 방어율 3.25, 탈삼진 2581개의 화려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이는 최고의 전성기였던 23세부터 26세까지의 4년이 빠진 기록으로, 4년간의 공백이 아니었다면 100승-1000삼진이 추가된 360승-3600삼진도 가능할 수 있었다.” (중략)
“1941년 12월8일. 연봉 재계약을 위해 차를 몰고 구단으로 향하던 펠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긴급뉴스를 들었다. 바로 '진주만 공습'의 소식이었다. 펠러는 곧바로 핸들을 꺾었고, 그로부터 3일후 스타 메이저리거로는 행크 그린버그(디트로이트)에 이은 2번째로 군에 자원입대했다. 당시 펠러는 암으로 작고한 아버지 대신 가족들의 생계를 돌보고 있어 징집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이것은 펠러에게 이유가 되지 못했다.
전함 앨라바마(USS Alabama)호에 배치된 펠러는 160km의 강속구를 뿌리는 대신 분당 160발이 발사되는 40mm 대공포 사수를 맡았다. 유명 메이저리거 대부분이 후방에 배치된 반면, 펠러는 최전방에서 싸웠다. 북해에서 독일 U-보트와 맞섰으며, 태평양 전선에서는 마셜섬 전투, 괌 상륙작전, 도쿄 공습 등 수많은 역사적 전투에 참가했다.”
#크리스티 매튜슨(C Mathewson) 이야기(2005년 11월 마이데일리 김용철 기자)
“1905년 25세이던 매튜슨은 정규리그에서 31승9패 방어율 1.28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올린 후 월드시리즈를 맞는다. 그리고 월드시리즈 1차전(3-0) 3차전(9-0) 5차전(2-0)에서 완봉승을 따내며 팀이 4승1패로 우승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당시 6일동안 등판한 3경기에서 27이닝 무실점, 14안타 1볼넷 18삼진을 뽑아내는 완벽한 피칭을 한 것.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하지만 매튜슨이 지금까지도 팬들에게 기억되고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은 그가 월드시리즈에서 선보인 압도적인 피칭이나 그가 남긴 기록 때문만이 아니다.
1918년 당시 38세의 매튜슨은 세계 1차대전에 참전을 선언하고 프랑스 동부전선에 투입된다. 그의 신분과 나이 때문에 이미 병역을 면제 받은 상황이었고 계속해서 야구선수로 활동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가야 하는 길을 특별한 이유를 만들거나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하며 의무를 회피하는 비겁자가 되지 않겠다"라며 자원입대한 것. (중략)
매튜슨은 독일군의 독가스 공격에 노출되며 폐가 크게 손상되었고 평생 깊은 기침을 하게 되었다.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악성 결핵으로 발전해 이후 여생을 병상에서 고통 받다가 1925년 월드시리즈 개막일에 4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가 최고의 피칭을 보인지 정확히 20년 뒤에 맞이한 비극이다.
최고의 야구 선수이자 자신의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죽어간 매튜슨은 이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다섯 선수 중의 한 명이 됐다.”
#테드 윌리엄스(T Williams)이야기 (2005년 11월 마이데일리 김형준 기자)
"1942년 타율 .356 36홈런 137타점을 기록한 윌리엄스는 1943년 방망이를 내려놓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윌리엄스는 꼬박 3년을 해군에서 비행 교관으로 복무했다. 절정이었던 만 24세에서 26세 사이를 군대에서 보낸 것. (중략)
1952년 다시 한국전 참전을 선언했다. 4월30일 보스턴은 다시 군복을 입게 되는 윌리엄스를 위해 '테드윌리엄스 데이'를 정했다. 이날 윌리엄스는 디지 트로트로부터 통산 324호 홈런을 뽑아냈다. 모두가 이를 윌리엄스의 마지막 경기이자 마지막 홈런으로 생각했다. 전장에 투입된 윌리엄스는 한차례 격추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39번의 출격을 무사히 마쳤다. 이듬해 8월 돌아온 윌리엄스는 스프링캠프를 포함해 전혀 훈련을 하지 못했음에도 곧바로 경기에 나서 37경기에서 타율 .407 출루율 .509 장타율 .901 13홈런 34타점을 기록하며 건재를 알렸다.”
테드 윌리엄스는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이며 통산 출루율 ML 역대 1위(0.482)를 기록하는 선수다.
#워렌 스판(W Spahn) 이야기 (Mlb Cassice, MLB 매니아분석 06/2/17)
“스판은 1940년에 보스턴 브레이브스(現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입단하였고 1942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였지만 상대 타자를 고의로 맞추라는 감독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불과 4경기에 등판한 뒤에 승패를 기록함 없이 다시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마이너리그는 스판의 무대가 될 수 없었다. 1점대 방어율로 타자들을 압도하였고 메이저리그 복귀는 머지않은 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엔 제2차 세계대전이 그를 가로 막았다. 젊은 나이의 스판은 징집 대상이었고 유럽의 전쟁터에서 3년간 소위로 복무하며 3개의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에서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도전정신과 용기를 배웠다.”고 회고했다.
어쨌든 감독의 이기심과 확대된 전쟁은 그의 메이저리그 1승을 4년이나 늦추었다. 1946년에 8승 5패를 기록하고 풀타임 선발로 출장한 다음해부터 17시즌 동안에 13시즌 +20승을 거두었다. 13시즌 +20승은 사이 영에 이은 역대 공동 2위(매튜슨과 타이)의 성적이다. 1952년의 14승에 1승이 더해진다면 스판은 그렉 매덕스 이전에 17년 연속 +15승이라는 기록을 보유할 수도 있었다.”
스판은 메이저리그 왼손 투수 최다승을 기록했고 소속 팀에서 영구결번이 됨은 물론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다.